“부일장학회 인수 박정희 전대통령이 직접 지시”
| ||
관련기사 | ||
| ||
고원증 전 예비역 준장 단독 인터뷰 “군부 지시에 김씨도장 받아와”
정수장학회 논란과 관련해 고원증 전 예비역 준장(변호사)이 9일 서울시청 앞 자신의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단독으로 만나, 5·16쿠데타 직후인 지난 1962년 군부가 고 김지태씨 소유의 부일장학회를 인수하는 과정을 증언했다. 가해자 격인 군부 쪽 관계자가 당시 정황을 증언한 것은 사실상 처음이다. 그는 특히 당시 부일장학회 재산 ‘인수’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직접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고 밝혀 파문이 예상된다.
이와 별도로 이날 공개된, 고 김지태씨의 자필로 보이는 ‘비망록’은 김씨가 부일장학회 재산을 5·16 군부에 넘긴 뒤인 62년 9월4일 서울의 아서원이라는 곳에서 ‘고 장군’과 이관구 5·16장학회 초대 이사장 등을 만나 대화한 내용을 메모한 것이다. 김씨의 비망록은 한자와 한글을 뒤섞어 흘림체로 쓰인데다, 복잡한 사정을 간략하게 표기하기도 해 완전한 해독이 어려운 대목이 많다. 그러나 전체적인 문맥을 보면, 부일장학회 재산이 군사정권에 의해 강제로 헌납됐다는 점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대화 내용은 주로 5·16 군부가 이미 재산을 헌납한 김씨에게 <부산일보> 사옥의 건물 완공과 윤전기 도입을 마무리지으라고 요구하는 내용으로 돼 있다.
비망록에 나오는 고 장군은 <문화방송> 사장과 5·16 장학회 이사를 지낸 고원증 예비역 준장으로 추측되며, 아서원은 서울 을지로에 있던 중국 음식점인 것으로 보인다. 비망록 내용 가운데 < > 안은 해석이다.
|
고원증 전 예비역 준장 일문일답
-<문화방송> <부산문화방송> <부산일보> 등 고 김지태씨의 재산이 군부로 넘어간 것은 헌납인가, 강탈인가?
=재산이 넘어간 경위에 대해선 모른다. 강요라고 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나는 다만 혁명정부(군사 정부)에서 이미 기부 받아놨다는 얘기를 들었고, 그걸 바탕으로 5·16장학회 재단을 만드는 요식행위에만 관여했을 뿐이다.
-김지태씨로부터 재산 헌납 서명을 받은 것은 언제, 어떤 식으로 이뤄졌나?
=62년 박정희 장군이 ‘중앙정보부에서 몇달 전에 재산을 기부 받아놓은 게 있다. (그냥 두면) 재산이 자꾸 유출된다고 하니, 그걸 기본재단으로 해서 5·16장학재단을 만들라’는 말을 했다. 그 말에 따라 그해 6월께 부산에 내려가 재산 양도서류에 김씨의 도장을 받아왔다.
-유족들은 당시 김씨가 수감중인 상태에서 수갑을 찬 채 날인했다고 하는데?
=김씨는 한 15평쯤 되는 부산 군수기지사령부 법무부장실(계엄사령부 법무관실)에 모시 한복 차림으로 걸어들어왔고, 수갑이나 포승줄은 전혀 없었다. 의자에 앉아서 나와 차를 마시며 몇마디 얘기도 나눴고,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본인이 ‘알았소’ 하고 도장을 찍었다. 수갑 얘기는 명백히 사실과 다른 말로, 유족들이 억울해서 과장되게 하는 말일 것이다.
-날인을 받을 당시의 분위기는?
=김씨는 침울하지도 않았고, 안색도 건강했다. 그는 “3사(<문화방송> <부산문화방송> <부산일보>)를 좋은 데 쓰시라고 혁명정부 쪽에 기증했다”고 하더라. 그 말을 듣고 나는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고맙다”고 했다. 날인 받은 법무부장실은 한 15평쯤 되는 꽤 넓은 곳으로, 나와 김씨, 법무관실 관계자 등 서너명이 동석했다. 한 10분만에 금방 끝났다.
-김씨의 장남 영구씨가 도장을 가져왔나?
=가족은 보지 못했다. 내가 관련 서류를 보고 있는 동안 누구를 시켜서 가져오라고 했을 수는 있다.
-당시 김씨의 부인과 부하직원들이 구속중이었다는 사실은 알았나?
=몰랐다.
-수감중이던 김씨는 날인 뒤 곧바로 풀려났나?
=얼마 안 돼서 풀려난 것으로 안다.
-당시 부일장학회의 10만평 땅에 대해서도 알았나?
=부일장학회와 10만평 땅의 존재 사실은 최근에야 알았다. 당시 (5·16장학)재단으로 넘겨받은 것은 <문화방송> 등 3개 회사만 있었고, 부일장학회는 서류상에 있지도 않았다. 3개 회사는 당시 적자였고, 부일장학회는 주로 삼화고무와 한국생사 등 큰 기업에 의존했을 것이다.
-장학재단을 만들면서 재산이 넘어온 과정을 따로 알아보지는 않았나?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이미 재산을 기부 받았다고 하는데 어떻게 (장학재단 설립을) 못하겠다고 하나. 본인이 기부했다고 하고, 몇달 전에 받아놓은 기부각서도 있었다.
-그동안 정수장학회(옛 5·16장학회) 문제가 정치권과 언론 등에서 많이 다뤄졌는데, 부일장학회 존재 사실을 몰랐나?
=기사를 자세히 보지 않았다. 82년에 정수장학회로 이름이 바뀐 것은 안다.
-9일 공개된 62년 9월4일자 김지태씨의 비망록에는 ‘고 장군’이 등장하고, 김씨와 함께 신문사 윤전기 문제 등을 논의한 것으로 나오는데?
=(버럭 화를 내며) ‘고 장군’이라고 하면 (63년 준장으로 예편한) 나를 지칭하는 것 같은데 그 만남이나 문서 얘긴 금시초문이다. 누가 문서를 만들었나. 본 사람이 있나. 내가 김씨를 만난 것은 6월께 부산(군수기지사령부 법무부장실)에서 한번 만난 것이 전부다. 누군가 위조한 것이거나 거짓말한 것일 것이다. 9월이라면 이미 김씨쪽 주장대로 재산을 다 빼앗긴 상태인데, 윤전기가 왜 등장하나. 전혀 사실이 아니다.
-5·16장학회와의 관계는?
=재단 설립을 위한 실무 작업을 내가 했고, 62∼65년 <문화방송> 사장을 하면서 장학회의 상임이사를 지냈다. 그 전이나 그 후에 개입한 일 없다.
-그렇다면 당시 김씨의 재산 헌납 또는 강탈 과정은 누가 잘 알고 있나?
=모두 중앙정보부에서 한 일이다.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가 당시 책임자인데 얘길 하겠나. 당시 군 법무관실 근무자도 이 문제는 잘 모를 것이다.
-열린우리당이 진상조사를 벌이고 있는데?
=여야가 국회에서 공식으로 조사위원회를 구성하면 조사에 응할 수 있다. 내가 아는 범위에서 말할 수 있을 뿐이다.
-김씨의 유족들에게는 어떤 마음인가?
=당시 재단을 만들 때는 ‘좋은 일 하는구나’ 싶어서 고맙다는 생각을 했다. 김씨 구속중에 벌어진 일이니까 ‘뺏겼다’는 주장을 할 수도 있겠지만, 강요인지 아닌지 나는 모른다. 황준범 기자 jayb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