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기어코 민족의 정체성을 파과하겠다는 자들
대한민국의 정신적 멸종
싸울 수 없는 자들을 위해 싸우는 戰士들에게
인사 드립니다. 熱帶夜가 지속되는 가운데 심신 모두 건강함을 유지하고 계시기 바랍니다. 살아가며 때로 참을 수 없는 일을 마주치게 되는 것이 어디 인간만의 일이겠습니까. 그러나 우리 인간만큼 자연의 섭리와 점점 멀어져 가는 생활양식을 개발해 가는 생명체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조금만 더워도 에어컨의 인공적 시원함을 찾고, 조금만 추워져도 보일러 스위치를 올리는 우리의 습성은 그러한 경향의 작은 예들에 불과할 것입니다. 시원함을 선사한 에어컨의 냉매들이나, 보일러의 연돌을 빠져 나간 탄산가스, 막힌 도로에서 공회전하는 엔진의 배기 가스 등은 지구 온난화라든가 여러 가지 형태의 기상 이변을 만들어 내고, 이러한 것들은 인간과 자연의 상호 파괴적 사이클을 가속시킵니다.
인간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기보다는 자연을 정복하거나 약취할 대상으로 보아 온 시간이 누적되는 만큼, 자연의 보복 정도도 보다 빠른 속도로 인간 문명을 파괴할 것입니다. 며칠 에어컨 바람을 피하여 산길을 걸으며, 잘못했다고 미안하다고 말해 본들 자연이 받고 있는 상처는 치유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아직 시간이 있을 때 인간 문명이 자연과 화해하고 서로가 입은 상처를 다스릴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도해 봅니다. 평소 자연에 대한 다소의 외경심을 가지고 살아 가는 것만이 자연의 폭발적 분노를 모면할 수 있는 길이 될 것입니다. 쓰레기를 아무렇게나 땅속에 파묻고, 비오는 날을 온갖 폐수와 공해물질을 하천에 방류하는 날로 생각하는 자들이 날뛰는 한, 인간에 대한 자연의 재앙적 보복을 면할 길은 없는 것입니다.
자연을 약탈하고 또한 파괴하며 살아가는 형태를 취하고 있는 생명체는 아마도 전 우주에서 인간이 유일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정도를 회복불능의 상태로 심화 시켜 온 주범의 명칭은 문명과 과학 발전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이러한 자연 모독과 파괴의 범죄행위에서 그래도 가장 자유로운 사람들은 우리가 오지(奧地)라고 부르는 곳에서 거주하는 미개인들과 비문명적 야만인들일 것입니다. 동물의 가죽으로 추위를 피하고, 나뭇가지와 낙엽을 긁어 모아 집을 데우고 먹거리를 준비하여 살아 가는 티베트의 변방 주민들이나, 파푸아 뉴기니의 정글에서 고구마의 일종을 주식으로 삼아 살아 가는 사람들이 자연의 분노에서 가장 멀리 떨어 져 있는 인간들일지도 모릅니다. 인류의 영원한 멸종을 막아 줄 마지막 호모 사피엔스가 될 그들에게 어떠한 문명의 복음도 전파되지 않는, 신의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대한민국의 정신적 멸종
그러나 이 한 여름 밤, 인류의 궁극적 멸종 가능성을 생각하는 것은 이 시대를 살아 가는 대한민국 공동체의 한 구성원으로서 한가하고 사치스러운 정신적 피서일 것입니다. 그것은 인류 전체의 문제를 인류가 좀 더 피부로 절감하기 전에, 오늘 그리고 내일 우리가 직면해야 하는 문제가 더 화급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인류의 멸종을 염려하기 전에 우선 우리 한민족의 정신적 멸종 가능성을 생각해야 하고, 그것에서부터 우리 스스로를 구원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한 공동체가 그 공동의 선(善)을 상실하고, 집단으로서의 정체성(identity)을 상실한다면, 그것은 그 공동체의 정신적 사망이고 멸종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된 다음, 설사 남아 있는 사람들이 어떤 다른 공동체에 편입되어 그들의 가치와 정체성으로 갈아 입고 생물학적 생존을 이어간다고 해도, 하나의 민족으로는 사망한 것과 다름 없을 것입니다. 대한민국이란 국가의 명칭이 존속되느냐 마느냐 하고는 별개의 문제로, 우리 민족의 공동선(共同善)과 정체성이 사라지는 순간, 우리 민족은 독립적 인격체로서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공동체의 더부살이 신세로 전락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쓰여 진 역사의 아득한 저편에서, 조선이란 국호를 사용하기 훨씬 전부터, 하나의 공동체를 구성하여 살아 온 민족입니다. 수 많은 역사의 격랑이 남긴 상처와 고통을 견뎌내며 살아 남은 하나의 공동체입니다. 우리는 같은 언어와 혈연적 유대, 자랑스럽고 수치스러운 모든 문화적 유산을 공유하며 살아 온 한민족입니다. 이 공동체의 선과 정체성은 그 역사 만큼이나 긴 시련 속에서 기적처럼 살아 남아 오늘 우리의 정신 속에 그 맥락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 선과 정체성이 무엇이든, 우리가 함께 울고 웃으며 견뎌 온 시련의 역사 자체가 우리의 정체성이 되었으며, 그 속에서 살아 남은 것이 우리의 공동선이 되었습니다.
무엇이 우리 민족을 그토록 강인하게 만들었으며, 인류 역사에서 그 비슷한 예를 찾기 힘든 생존의 대가로 만들었습니까? 그 잘 났다는 유대민족도 우리 민족 만큼 수도 없이 많은 주변의 침탈을 견뎌 낸 민족은 아니며, 우리 민족에게 그들의 유일신 같은 존재가 있어 그것을 지주로 5천년 넘는 세월을 뭉쳐 살아온 것도 아닙니다. 우리에게도 많은 자랑스러운 조상과 부끄러운 조상이 있었으며, 현명하고 강인했던 역사가 있는 만큼, 어리석고 분열되어 나약했던 역사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처럼 완전히 멸망했던 적도, 흩어졌던 적도 없습니다.
이 불편하고 비좁은(원래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지구의 한 구석에서 역사의 모든 영욕을 인내하며, 하나의 문화와 전통을 일구며 살아 온, 그 모든 것을 이겨 온 우리의 힘, 우리의 정체성은 바로 우리가 한 민족, 한 가족이라는 끈끈한 공동체 의식으로 결집된 존재였기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오랜 세월, 이 공동체를 이끈 우리의 가장(家長)과 장로(長老)들이 그 모든 허물과 부끄러움에도 불구하고, 자랑스럽고도 강인한 책임의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 모든 시련의 시대마다, 이 공동체의 존속과 미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조상들이 있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공동선이요, 우리의 정체성인 것입니다.
기어코 민족의 정체성을 파괴하겠다는 자들
백년 전, 우리 민족은 일본 제국 주의자들의 군화에 다시 짓밟히는 오욕의 역사를 갖게 되었습니다. 부끄러운 조상들의 분열과 안이함이 자초한 것이기도 하며, 탐욕과 일족의 영화 앞에 민족의 생존권을 팔아 넘길 수 있었던 극소수의 힘있는 자들이 주도적으로 거든 일이기도 합니다. 36년 간 국토는 자유롭게 약탈되고 공동체의 역사와 가치는 주도면밀하게 파괴되었으며, 수많은 민생이 때 이른 죽음을 맞아야 했으며, 생존과 맞바꾸어 민족의 얼과 정체성은 혼탁해지고 한없이 약화되어 갔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련의 시대마다, 우리 공동체의 전통에 따라, 많은 조상님들이 자신의 목숨을 걸고 이 모든 침탈과 파괴에 대항하여 싸웠습니다. 우리는 그 분들을 제대로 된 이름과 행적으로 기억하지도 못하지만, 그 분들의 분노와 인내, 그리고 피흘림과 죽음이 없었다면, 오늘 이런 글을 쓰는 저도 없었을 것이며, 이런 글을 읽어 줄 사람 역시 없었을 것입니다. (이 점, 나는 고도의 삽질님의 외조부께 무릎 꿇고 머리 조아립니다. 그리고 고삽님의 글에 점수를 주지 않은 서프인들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잘 알 듯, 민족의 해방은 온전히 우리 조상의 힘으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미국과 소련 등 연합군에 의해 진행되었으며, 이 와중에서 일제에 충성하고 부역한 자들이 해방된 조국의 일순위 애국자들로 변신했고, 진정한 애국투사분들은 대부분 그 지치고 병든 생애를 시대의 그늘에서 한스럽게 마치셨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의 혼탁해 진 민족 정신과 병든 역사는 제대로 된 치유의 시간을 한 번도 갖지 못했던 것입니다. 지난 60년간, 말로만 독립된 우리 민족은 두 조각으로 나뉘어 인위적 이데올로기의 전쟁을 계속하는 가운데, 진정한 해방이나 독립, 민족 정체성의 회복, 역사의 복원 작업 등은 단 한번도 제대로 한 적이 없었다는 말씀입니다.
내년이면 해방 후 60년이 됩니다. 지난 60년 우리의 역사는 분명 패망한 일본 제국주의가 지배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미군정 3년을 거쳐, 친미 정권으로 탄생한 이승만에 의해 중용된 친일 군인들과 정치인들에 의한 자유당 독재가 4.19에 의해 종식되는가 하는 순간, 우리 역사는 또 다른 일본 제국주의의 충견에서 물어 뜯기게 됩니다. 혈서로 일제에 충성을 다짐하고, 이름마저 두 차례나 진정한 일본인답게 바꾸었던 박정희라는 자의 쿠데타와 그의 개발독재 18년, 그리고 그가 키운 정치 군인 전두환과 노태우의 군부독재 13년, 그러한 정치 군인과 야합한 김영삼의 5년 등, 도합 또 다른 36년간, 우리 민족은 통째로 일제의 후손과 친일의 잔재들이 지배해 온 나라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시대는 민족 중흥의 시대, 민주화 쟁취의 시대, 문민 정치의 시대 등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1909년부터 1945년까지가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침탈이었다면, 1961년부터 1997년까지는 그 후예와 친일의 잔재에 의해 억압되고 유린된 것이 우리 역사의 참된 모습인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박정희는 민족 중흥을 이끈 지도자가 아니라, 일제의 20세기 한민족 침탈 제 2기를 연 “일본 제국 마지막 군인”이었다는 것이 한치의 오류 없는 냉엄한 역사적 시각일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그 자의 딸이 감히 대한민국의 정체성 문제를 최초의 실질적 공화국 대통령에게 묻고 있습니다. 일본 제국주의가 자랑스럽게 생각한 일본제국 군인 다까끼 마사오, 아니 오까모도 미노루의 딸이 친일 매국의 잔재들과 쿠데타 세력 부역과 영웅화의 앞잡이, 정경유착과 온갖 부패 비리의 충실한 하수인들이었던 차떼기 잔당과 조중동 등의 비호를 믿고, 그들의 확고한 에이젼트와 지도자가 되기 위해 별 우습지도 않은 발광을 떨고 있습니다.
박근혜라는 인간이 차떼기 당의 대표가 되었을 때, 나는 “정치인의 모래시계”라는 글을 통해, “그 다음에 어떻게 살았는가”가 중요한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박근혜만이 아니라, 우리 모든 인간은 크든 작든, 많든 적든, 과오를 범하게 마련입니다. 아버지가 세계 정치 역사에 남을 “유신헌법”이라는 영구독재 기능 업그레이드 버전 헌법을 만들고 긴급조치 등으로 세상을 폭압할 때, 박근혜가 그녀의 위치에서 무엇을 했는가 안 했는가를 따지고자 한 것이 아닙니다. 당대 정치가로서 현재의 위치에서 어떻게 살아 갈 것인가를 묻는 것이었습니다. 김희선 의원 등이 국회에서 짐짝처럼 취급되어 울부짖으며 끌려 나갈 때, 그녀는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파안대소 했는가를 물었던 것이며, 부모에 대한 영남지방의 특이한 향수를 불러 깨워 지역주의에 근거한 정치 판도를 앞장서 고착 시킨 그녀의 역사관과 민족의식을 물었던 것입니다.
일찍이 장준하 선생이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대한민국에 대통령이 될 수 없는 자가 3명이 있다. 하나는 오까모도 미노루, 또 하나는 다까기 마사오,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박정희이다” 라고. 나는 말하고 싶습니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말할 수 없는 자가 3명이 있다. 하나는 정수장학회 이사장이고, 다른 하나는 부산일보 이사장이며, 마지막 하나는 차떼기 당의 대표라고”. 나는 자신의 정보부장에게 죽은 자와도, 평생 돈 되는 직업 가진 일 없이 거대 재단이나 신문사의 사주로 있는 늙은 처녀와도 싸우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까모도 미노루의 자식이, 다까기 마사오의 자식이, 박정희의 자식이 나서, 국민이 적법하게 선출한 대통령에게 국가의 정체성 따위를 묻는 오만방자를 저지른다면 그 귀싸대기를 고막이 터질 정도로 때려 주고는 싶습니다.
태양 아래 모든 것은 변합니다. 인간이나 민족, 국가의 지향점이나 정체성조차도 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조상 아래 이루어진 공동체의 정체성은 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나의 아버지가 자랑스럽든 또는 증오스럽든 내가 그의 유전자를 물려 받고 태어 난 것과 같은 것이며, 죽어도 변할 수 없는 사실이자 운명인 것입니다. 그러한 운명을 부정하고, 그 공동체의 정당한 캡틴을 저주하며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발목을 잡는 자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친일 쿠데타 권력의 화신이었던 독재자의 자식일 뿐 아니라, 그러한 자들에게 붙어 공동체의 정체성을 파괴하는 일에 앞장서는 무리들의 대표라면, 나는 그 자의 머리를 돌로 깨어 죽이고 싶습니다. 그것은 인간적 분노이기 이전에 내가 속한 공동체의 진정한 정체성을 보호하고자 하는 우리 선조들의 전통이며, 정신적으로 멸종되고 싶지 않은 생존 본능인 것입니다.
일제 시대 친일파가 아니었던 자가 누구냐고 말하는 정치 모리배들과 조중동, 그리고 경제가 중요한데 쓸데 없는 일에 국론을 분열시키고 있다고 떠드는 재벌과 그들이 던져주는 비스켓 조각을 쫓아 다니는 썩은 먹물들에게 경고하고 싶습니다. 그대들의 가면이 아직 유효하기 때문에 살려 두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조용한 개혁과 시민혁명을 피의 혁명으로 바꾸고 싶다면 계속 떠들어 보라고
먹물의가면(서프라이즈 객원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