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반직 공무원 A씨는 최근 퇴사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7급 공채 시험을 거쳐 힘들게 얻은 직장이지만, 다니면 다닐수록 미래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A씨가 가장 불만족스러워하는 부분은 월급이다. 200만원 조금 넘는 월급으로는 당장의 생활비도 빠듯했다. 한 달 벌어 한 달 사는 삶에 지친 A씨는 전문직 자격증 취득을 준비하고 있다.
“지방에서 힘들게 서울로 올라왔는데 공무원 월급으로는 평생 일해도 서울에 집 한 채 살 수 없다. 전문직 자격증을 따서 조직을 나가는 게 유일한 탈출구다.”
# 최근 육군의 한 사단은 비상 간담회를 열었다. 사단 내 장기 복무 지원자가 급격히 감소한 탓이다. 장기 복무를 왜 기피하냐는 질문에 해당 사단 장교들은 ‘사회적 존중도 받지 못한다’ ‘치열한 진급 경쟁을 할 자신이 없다’ ‘처우가 부족하다’는 답변을 내놨다. 군 내부 관계자는 “장기 복무 지원율보다 5년 차 전역 지원율이 더 높다는 말이 나올 정도”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5년 차 전역은 장기 복무 장교가 5년 차에 전역을 할 수 있도록 만든 제도다. 주로 육군사관학교 출신이 지원한다. 즉, 일부 육사 출신마저도 군에 남는 것 보다는 ‘전역하는 게 낫다’고 판단하는 셈이다.
# 중앙부처에서 일하는 공무원 B씨는 최근 인터넷에서 한 누리꾼과 설전을 벌였다. 월급 1.7% 인상이 부당하다고 생각해 자주 드나드는 커뮤니티에 글을 쓴 게 화근이었다. 댓글로 계속 공방이 이어지자 상대방은 `누칼협`이라는 말을 꺼냈다. `누가 칼로 협박했냐`의 줄임말로, 누가 너 공무원 하라고 칼로 협박했냐라는 뜻의 말이었다. 자기가 원해서 해놓고 왜 징징대냐며 ‘징무원’이라는 멸칭도 덧붙였다. 계속되는 비아냥에 B씨는 결국 말꼬리를 내렸다.
“제대로 된 논의를 해보려고 해도 누칼협·징무원 등의 조롱만 돌아온다. 누가 이런 환경에서 일하고 싶겠나. 과거에는 명예라도 있었는데, 이제는 명예도 없다.”
한때 최고 직업으로 선망받던 공무원 위상이 날로 추락 중이다. 박봉과 격무 그리고 사회적인 멸시에 지친 젊은 세대가 공직을 떠나고 있다. 공무원 지원율은 3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공무원연금공단에 따르면 올해 9급 공무원 공채 필기시험에 지원한 응시자 수는 16만5524명, 경쟁률 29.2 대 1을 기록했다. 1992년 19 대 1의 경쟁률을 보인 이래 30년 만에 가장 낮은 수치다. 7급 공무원 경쟁률도 올해 42.7 대 1로 43년 만의 최저치를 보였다.
조직을 떠나는 퇴직자도 점차 늘어난다. 2021년 퇴직한 공무원 4만4676명 중 5년 차 이하 인력은 1만1498명이다. 4년 전인 2017년(5613명)의 2배다. 퇴직자 전체에서 5년 차 이하가 차지하는 비중도 15.1%에서 25.7%로 증가했다.
젊은 세대가 공직을 외면하는 이유로는 ‘박봉’과 ‘격무’가 꼽힌다. 서울시공무원노동조합(서공노)은 서울시 9급 신규 공무원 1호봉의 올해 8월 급여 실수령액이 168만원 수준이라고 밝혔다. 급여 총액은 201만원가량인데 각종 세금과 건강보험료, 기여금 등 공제액을 뺀 순지급액이 168만원대로 나타났다. 7급 1호봉(9급 3호봉)의 급여 실수령액도 175만원 수준으로 조사됐다. 서공노 주장대로라면 9급 1호봉 실수령액은 올해 최저임금보다 23만1000원이 작다. 사실상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셈이다. 익명을 요구한 공무원 C씨는 “상여금과 수당을 다 받아도 공제가 많은 탓에 실제 손에 쥐는 현금은 턱없이 부족한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울분을 토했다.
야근을 밥 먹듯 하는 근무 환경도 기피 사유다. 특히 교정직 공무원, 보호관찰관 등 특수 보직에 있는 직군일수록 사실상 휴무가 없을 정도로 과로하는 경우가 많다. 법무부 공무원 D씨는 “교정직은 휴무를 보장받지 못하고 추가 출근하는 사례가 적잖다. 일부 보호관찰관은 퇴근 후에도 서류작업을 하는 등 격무에 시달린다”고 분위기를 들려준다.
싸늘한 사회적 시선 역시 공직을 떠나게 만든다. 최근 서울공무원노조의 임금 인상 항의 시위를 두고 나온 ‘누칼협’과 ‘징무원’이라는 표현이 대표적이다. 누칼협은 누가 칼로 협박했냐라는 신조어다. 스스로 공무원을 선택해놓고 왜 불만이냐는 뜻으로 쓰인다. 징무원은 ‘징징대는 공무원’의 줄임말이다.
사회적 시선에 대한 불만은 경찰과 군 등 별정직 공무원에서 더 강하게 나타난다. 일부 경찰 공무원은 경찰을 비난하는 누리꾼에게 ‘견민’이라는 말을 써가며 맞불을 놓는다. 견민은 경찰을 ‘견찰’로 부르는 누리꾼에 맞서 ‘국민’에 ‘견’자를 붙여만든 말이다. 군 장교와 부사관 역시 ‘간부는 적이다’ 등의 이미지에 회의감을 느끼는 이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젊은 공무원을 중심으로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더 커지고 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은 정부 측에 요구한 임금 7.4% 인상안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전국 각지에서 집회를 여는 등 실력행사에 나섰다.
[반진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