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시절 그리분 시절,
이 몸 파릇파릇하던 시절!
전기읍고 차 안들오는 첩첩산중 궁박한 고향마실에
내보다 한 살 많은 친구가 있었네요!
초등학교도 졸업못하고 어린 나이에 한양갔는데~~
서울 해방촌 변두리 편물공장에 취직하여
겨우겨우 입에 풀칠하더니
언제부턴가 고향 올때엔, 단정한 넥타이에 번쩍이는 자가용을!!
몇년전부터 개성공단서 돈 자알~ 번다며 입이 귀에 걸리더만
“버릇읍는 북한엔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 는
나랏님 말쌈 한마디에, 반평생 피땀흘려 쌓아온 재산
북녘산천에 떨구어 놓고, 미친 듯이 헤매더만
근자에 “자리잡아가고 있으니, 놀러 함 오라는~~”
반가운 마음에 지난주말에 가보니
번듯한 가게를 세내어 부부가 옷소매상을~~
가게 한쪽 구석에 멸치를 안주로 쐬주한잔 마시노라니
친구부인이 (약간 어눌한 말투로~)
“사장니임!! 손님이 들고있는 이옷 얼마 받으믄 되요??”
칭구(흘낏 둘러보더니) “팔만오처넌이네”
부인 “오만팔처넌이라네요”
손님 “생각보다 비싸네요, 좀 깍아주슈!!”
부인 (목소리를 낮추어) “오만오처넌만 주세요!!”
이리하여 칭구는 옷 팔고,
손님은 싸게 샀다며 기쁜 맘으로 떠나고~~
칭구 “나라에서 대책읍시 한순간에 정책을 바꾸는 바람에
내도 먹고 살기위해선 우짤 수 읍시 이렇게~~”
내 “그심정 이해허네!!”
자고로
노인들 “죽고잡다!”는 말
노처녀 “시집앙가!!”
장사꾼 “밑지고 팔아예!!”가 거짓말이라는 건 들어봤는데
현장을 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