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숙종임금은
허름한 과객차림으로 대궐을 벗어나
백성들과 직접 소통혔다는 기록이 역사책에 자주 나오는데!!
폭우가 쏟아지는 어느 여름날
“이렇게 비가 많이 오는데, 백성들은 우째 살꼬??” 궁금혀서 길을 나섯는데!
중화무렵에 한강 모래밭에 도착혀보니
어린 백성이, 부친을 장사지내려 강변에 묘터를 파고 있는지라
이를 본 숙종
우매한 백성이 너무도 가엽고, 불쌍하여 눈물을 뚝뚝 흘리며
“거기에 조상을 모시믄, 올여름 태풍에 큰일 날거라!,
나가 묘터를 잡아줄 터이니~”
이리하여 아비를 양지바른 언덕에 모시게 하고,
조상 잘 모시라며, 논 열마지기에 상당하는 은자 백냥을 하사혔는데~~
아무리 생각혀도
물가에 아비묘를 모시려는 백성이 이해불가하여
숙종 “누가 이곳에 묘터를 잡아주더노??”
백성 “저~기 보이는 양지골에 용한 풍수가 살고있는데,
그냥반 가라사대 여기다 아부지를 모시믄, 즉시로 발복하리라!!
혀서 그대로 따랐습니다!!”
듣고 보니
넘의 아비 묘터를 물가에 잡아 준
풍수란 넘 소행이 너무나 괘씸한지라
경을 칠 으도로 한걸음에 달려가 보니,
부엌한칸 방한칸에 통시한채인 담도읍는 오두막에
선비가 글을 읽고 있는지라
분노한 숙종
“니는 우째 생겨무근 백성이기에, 조상 묘터를 물가에~"소리 지르니
풍수 “아하~, 저 아래 떡쇠네 아비 장례식 보신거 같은데,
거기에 묘터를 다듬으믄, 용루(용으 눈물)가 절로 떨어져서
시체도 모시기 전에, 상주에게는 한재산 생기고,
나도 크게 출세하게 될 명당이라서~~"
가만히 들어보니
“분명 자신이 떡쇠에게 한재산 넘겨줬고,
더하여 용에 해당하는 자신으 눈물을 묘터에 흘렸으니~~”
즉시로다가 선비를 대궐로 데불고 와,
임금으 선생으로 떠받들었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