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예 집회와 시위를 하지 말라고 해라!"
시민사회단체, 개정 집시법에 집단반발... 불복종운동 선언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권박효원(10zzung) 기자
ⓒ2004 권박효원
"농민의 삶을 짓밟아놓고서는 (이에 저항하는) 집회를 못하게 하는 것은 만행이다. 3월 이후의 각 농민집회는 신고하지 않고 진행할 것이다." (문경식 전국 농민회 회장)
"울산에서 박일수 열사 관련 집회를 기존대로 진행하고 있다. 각 지역 본부별로 개악된 집시법에 대한 기자회견을 조직하며, 법을 어겨 투쟁하겠다."(신성철 민주노총 부위원장)
"개악된 집시법의 문제점을 알리기 위해 지난 1월부터 목요집회를 신고없이 하고 있다. 개정된 집시법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고 있어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부정하고 있다." (조순덕 민주화운동실천가족협의회 회장)
"곧 집시법에 대한 헌법소원을 내겠다. 3월 20일 국제반전행동는 일단 합법적인 집회신고를 냈지만, 경찰당국이 허가하지 않고 있다. 경찰이 불허한다면 불복종으로 진행할 수밖에 없다." (이태호 참여연대 정책실장)
"이번 집시법 개악을 보면서 언론 보도에 실망을 금할 수 없다. <경향신문>과 <한겨레>를 제외한 대부분 신문이 이에 대한 기사를 다루지 않았다." (최민희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사무총장)
3월부터 시행되는 개정 집회와시위에관한법률(이하 집시법)에 대해 시민사회단체가 일제히 불복종을 선언하고 나섰다. 집회신고를 아예 하지 않거나 신고를 하더라도 경찰의 금지나 제한을 따르지 않겠다는 것이다.
또한 이번 불복종 운동을 계기로 현 집시법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하고, 이후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집시법으로의 개정을 추진한다는 것이 이들의 방침이다.
시민사회단체들은 4일 오전 10시 서울 안국동 느티나무까페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개악 집시법 대응 연석회의(이하 연석회의, jipsi.jinbo.net)'를 발족했다.
연석회의에는 민주노총, 민중연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환경운동연합, 인권운동사랑방, 참여연대 등 다양한 분야의 85개 시민사회단체들이 포함되어 있다.
"집회신고 안낸다. 금지해도 집회한다"
시민사회단체들은 "개악된 집시법은 아예 집회와 시위를 금지하는 법"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번에 바뀐 집시법은 집회의 확성기 소리 등이 대통령령이 정하는 소음기준(주간 80데시벨)을 초과하면 주최단체가 주변 기업과 상인으로부터 손해배상청구를 당하도록 되어있다. 그러나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가 60데시벨 수준이어서, 법대로라면 소규모 육성시위나 침묵시위만 가능하게 된다.
또한 유치원을 포함한 초중고 학교시설과 군사시설, 각국 대사관과 외교사절 숙소 주변 집회, 주요도로에서의 행진을 금지하고 있다. 서울시만 해도 2229개의 학교시설이 있고 시내 대부분의 도로가 주요도로인 것을 감안하면 집회공간 확보 자체가 어려워지는 상황이다.
최민희 민언련 사무총장은 "지금 마이크로 나가는 소리만 해도 80데시벨이 넘는다. 당장 3월 5일 <조선일보> 반대집회가 있는데 80데시벨 이하로는 도저히 할 수 없다"며 "기존대로 하는 집회를 하는 게 불복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집시법 개정 과정에 대해서도 '의견수렴절차 무시'라는 지적이 이어졌다. 입법예고와 공청회를 통한 의견수렴, 정부내 부처간 협의, 국무회의 논의, 국가인권위원회 통보 및 협의절차를 무시했다는 것이다. 단체들은 "경찰당국이 국회 행정자치위원회 의원들을 개별 설득해 독소조항을 삽입했다"고 주장했다.
그렇다고 개정 이전 집시법이 모범사례는 아니라는 것이 단체들의 입장이다.
박석운 민중연대 집행위원장은 "기존 집시법에도 위헌적 독소조항이 많지만, 당장 개악 내용에 대해 집중하는 판에 앞의 것까지 문제제기하면 언론으로부터 마녀사냥을 당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후 집시법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면 헌법정신에 따른 집시법 개정운동으로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민변 법률지원단은 이미 새로운 형태의 개정 집시법안을 준비하고 있다.
"개악 집시법, 집회하지 말라는 소리"
그러나 아직 연석회의의 불복종 운동 전개방법에 대한 논의가 끝난 것은 아니다.
단체 지도부가 줄줄이 연행될 경우 당장 운동에 차질이 생기는 데다가, 각 단체 내부에서도 불복종 수위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도 있다. 특히 총선을 앞두고 유권자참여운동에 집중하는 단체들은 적극적으로 불복종운동에 나서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연석회의 참여 단체가 일괄적으로 미신고 집회라는 강수를 두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일단 연석회의는 다음주 중 참여연대 주도로 개정 집시법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할 예정이다. 또한 오는 10일 오후 '개악 집시법과 불복종 운동' 토론회에서 구체적인 운동방식과 개정안 등을 논의하고, 18일 집중 기획집회를 벌인다.
또한 활동가용 집시법 불복종 매뉴얼을 발간하고 대중조직 교육용 비디오 제작으로 집시법에 대한 대응방법을 알려나가고, 집회의 자유 침해사례를 수집할 감시단도 구성할 계획이다. 연석회의는 온라인을 통해 청와대와 경찰에 항의하는 사이버 시위도 동시에 전개한다는 방침이다.